만월대는 송악산 남쪽 기슭 경사지를 깎아 만든 넓은 계단식 대지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세워진 크고 작은 전각에 다양한 종류의 기와를 올려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궁궐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궁전」 中에서
고려의 역사와 함께한 만월대는 여러 번의 화재와 외세의 침입 등으로 소실되어 그 자리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러 시기에 걸쳐 만든 다양한 기와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만월대에서 출토된 기와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유물은 기와(瓦)입니다. 기와는 목조 건물의 지붕을 덮는 건축 재료입니다. 비와 눈, 불로부터 건물을 보호해주고 아름답고 멋진 형태로 건물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기와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수키와와 암키와가 있고, 처마 끝에서 그것을 마감해 주는 수막새와 암막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의 용마루나 내림마루에 사용하는 치미·용두·잡상과 같은 마루 장식기와와 착고와 적새 같은 마루 축조기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전돌(塼)은 건물의 바닥이나 벽을 덮는 건축 재료입니다. 기와와 전돌을 합쳐 와전(瓦塼)이라고 부릅니다.
만월대 출토 유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막새에 그려진 다양한 문양입니다. 만월대에서는 불교 상징의 연꽃을 새긴 연화문, 넝쿨 식물을 새긴 당초문, 넝쿨 식물과 꽃을 함께 새긴 당초화문, 초화문, 화문 등의 막새가 발견되었습니다.
만월대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문양은 일휘문(日暉文) 또는 귀목문(鬼目文)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일휘문은 동그란 모습이 빛나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귀목문은 귀신의 눈을 상징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만월대에서는 궁궐에 어울리는 용문과 봉황문을 새긴 막새도 출토되었습니다. 이들 문양은 일반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범자문은 고대 인도 문자를 문양으로 만든 불교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용문·봉황문·범자문 막새가 고려왕실의 제례가 이루어진 경령전 주변에서 주로 출토되었다는 것입니다. 경령전이 어떤 곳이길래 이들 문양으로 지붕을 장식했을까요? [관련 유구 바로가기] [관련 콘텐츠 바로가기]
고려시대 기와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 명문기와
치미나 용두를 비롯한 잡상은 건물의 위상이나 여러 전각의 지붕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월대에서 치미의 일부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전체의 형태는 알 수 없습니다.
용두는 용 머리 모양의 장식기와입니다. 용두는 용이 가진 신령한 힘으로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용두가 지붕 위에서 큰 입을 벌리며 궁궐에 들어온 나쁜 기운을 쫓아내던 모습이 상상되나요?
만월대에서는 용과 새 모양을 형상한 잡상도 출토되었습니다. 아래에 있는 새 모양의 잡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튀어나온 부리와 선명하게 찍힌 콧구멍이 뚜렷합니다. 어떤 새를 보고 만들었을까요? 오리일까요?
기와와 전돌에 새겨진 생활의 흔적들
바닥이나 벽에 사용된 전돌도 흙을 빚어 구워서 만들어졌고 문양이나 글자도 새겨 넣어 졌습니다. 궁궐도 생활의 공간이다 보니 그 안에도 재미있는 일상의 흔적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 예로 기와와 전돌로 새겨진 바둑판이나 고누판을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지엄한 궁궐 안에서 전돌 위에 바둑판과 고누판을 그려놓고 놀이를 했을까요? 공동 조사단은 뾰족한 꼬챙이로 금을 그어서 그린 고누판과 바둑판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지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만월대 고누판은 지금까지 전돌 3개와 암키와 1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누판이 서로 다르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암키와에 그려진 고누판은 요즘 우리가 활용하는 참고누판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전돌에 새겨진 고누판은 한 줄 혹은 두 줄이 더 그려져 있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돌을 세 개를 연결하여 꼰을 만드는 참고누 놀이와는 놀이방법이 다를 텐데, 아직 어떻게 놀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놀이라면 분명히 특별한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직접 놀이법을 복원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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