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성 만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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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경전지와 중심건축군 대형계단 전경(남→북) |
총 4개 중 번째의 이 유구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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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둘레 : 약 3km, 면적 : 4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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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황해북도 개성시 송악동 송악산 남쪽기슭(구. 만월동 71-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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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유구북쪽으로는 송악산이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개성시내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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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경위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반 고유섭 선생이 만월대 유적에 대해 실측조사 및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1973-1974년에는 북한에서 중심건축군 지표조사와 서북건축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1985년 고고학연구소가 만월대 못 유적과 만월대의 동쪽 지하 하수도 시설을 발굴 조사하였다. 2007년부터는 만월대 서부건축군에 대한 남북공동발굴조사가 시작되어 2018년까지 총 8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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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고려궁성 만월대는 개성의 북쪽에 자리한 송악산을 진산으로 한 그 남쪽의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의 부흥산, 자남산과 서쪽의 오공산과 야매산, 남쪽의 용수산을 마주하고 있다. 처음 태조 왕건이 919년 정월에 수도를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기면서 창건되었을 때는 소규모였으나 961년(광종 12년)부터 963년 6월까지 진행된 대규모의 중건을 통하여 화려하게 탈바꿈하였다. 이후 1011년(현종 2년)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어 2년에 걸친 중건이 이루어졌으며 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회경전 권역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높이 올린 석축 위에 축조하였다. 거란의 2차 침략 이후부터 12세기 후반 의종 때까지의 궁궐은 정궁으로서의 면모와 위상을 보여주었다. 1126년(인종 4년) 이자겸·척준경의 난과 1171년(명종 1년)의 화재로 궁궐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곧 중건되었다. 이자겸의 난이 수습된 후 인종은 궁궐을 중수하며 전각 이름을 모두 바꾸어 버리는 대역사를 단행하였다. 궁궐의 권위가 다시금 크게 위협받은 것은 몽고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였다. 강화로 수도를 옮기면서 개성의 궁궐은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몽고와 강화한 뒤 개성으로 돌아와 복구하였다. 정전으로 사용되던 건덕전과 회경전은 복구되지 못하고 편전인 강안전만 복구되었는데 이때부터 국왕들은 이궁에서 주로 거처하였다. 이후 궁궐은 주로 즉위식이나 왕실의 불교행사와 관련되어 이용되었으며 1362년(공민왕 1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다시 수난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총 4개 중 번째의 이 유구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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