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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년 송나라 사신들이 머물던 순천관
  • 서긍, 벽란정에서 1박 후 객관인 순천관으로 향하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권27, 관사(官舍)

1123년 6월 12일 고려의 국제 무역항인 예성항에 도착한 송나라 사신단은 벽란정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숙소인 순천관으로 향했다. 이들은 나성의 정서쪽 대문인 선의문을 지나 지금의 개성 남대문 근처의 경시사를 지난 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 순천관에 도착했다.
 

송나라 사신들의 객관이었던 순천관에 관한 기록(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순천관은 외문과 중문을 지나면 정면에 정청이 있었다. 정청은 5칸이며, 양쪽 행랑은 각각 2칸인데 창이 없이 넓게 트여 있었다. 현판에는 ‘순천지관(順天之館)’이라고 쓰여 있었고 동서(東西) 양쪽으로는 2개의 계단을 만들었는데, 모두 난간을 설치하였다.

 

순천관 앞에는 두 채의 정자가 있었다. 순천관 뒤편에는 낙빈정이라는 규모가 큰 정자가 있는데 이곳은 중국 사신들이 고려 관리인 관반관을 초청해 접대하던 곳이었다. 낙빈정 양옆에는 정사와 부사가 머무르는 거처가 있었고 그 외의 사신들이 머무르는 전각이 따로 있었다. 송나라 사신단은 6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순천관에 머물며 고려와의 협력을 성사시키기 위한 임무를 수행했다.

 

​순천관은 원래 대명궁(大明宮)이란 별궁으로 문종대에 창건되었으나, 1089년에 국자감(國子監)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서긍이 왔을 때는 사신들의 객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1126년 ‘이자겸의 난’으로 본궐의 화재가 일어나자 인종은 이를 다시 대명궁으로 이름을 복구하고 연경궁과 대명궁을 오가며 임금의 거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대명궁은 고려 성균관이 되었고, 1988년부터는 고려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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