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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수에 담긴 만월대 회상

  • 만월대를 찾아 망국의 회한을 노래하다 
    원천석과  길재의 시조, 『청구영언(靑丘永言)』

    성현,  「연경궁고기(延慶宮古基)」,『속동문선(續東文選)』 제7권

    이이,  만월대(滿月臺),『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제2권

    권필만월대(滿月臺),『석주집(石洲集)』제4권 

    홍세태, 만월대(滿月臺), 『유하집(柳下集)』 제1권 

    조수삼, 「송도를 지나면서 만월대에 오르다(過松京登滿月臺)」, 『추재집(秋齋集)』 제1권 

    작자미상, 만월대(滿月臺), 『계산기정(薊山紀程)』 제1권 

470여 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그 위상을 상실했다. 그리고 폐허로 남은 만월대는 패망한 고려의 허망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수많은 사람이 만월대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만월대에서 느끼는 만감과 소회를 한 편의 시로 남겼다.

 

만월대에 관한 가장 오래된 시로서 시조 두 편이 전해진다. 한 편은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미상)이 지은 시조였고, 다른 한편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었던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가 지은 시조였다. 이들은 모두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살았던 문인으로서 조선이 개국한 이후 벼슬을 버리고 은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지은 시에서는 슬픔과 허망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 겨워 하노라.

 

- 원천석, 「회고가(懷古歌)」

운곡 원천석

▲ 운곡 원천석 영정(원주 창의사(彰義祠) 소장)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야은 길재

▲ 야은 길재 초상(구미 경모각(敬慕閣) 소장)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예술인으로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했던 인물로서 만월대를 바라보며 ‘연경궁고기(延慶宮古基)’라는 시를 남겼다. 연경궁은 만월대에 있던 이궁이었지만 15세기 초에는 고려 궁궐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곡령이 허공을 업신여겨 붉고 푸르게 떠서 / 鵠嶺凌空紫翠浮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앉은 듯 신령한 마을을 끌어안았네 / 龍蟠虎踞擁神州

강안전 위에는 소나무가 천 그루요 / 康安殿上松千夫

위봉루 앞에는 흙이 언덕을 이루었네 / 威鳳樓前土一丘

비단옷의 향기는 사라지고 봄만 홀로 남았고 / 羅綺香消春獨在

생황과 노랫소리 다했는데 물만 속절없이 흐르네 / 笙歌聲盡水空流

흥하고 망한 일 물어서 무엇하나 / 不須問訊興亡事

석양에 바람과 안개마저 가득하니 보는 대로 시름이네 / 落日風煙滿目愁

 

- 성현 , 「연경궁고기(延慶宮古基)」(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달진 역)


『동문선』, 『율곡선생전집』, 『석주집』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7~1584)도 만월대를 찾아 소감을 남겼다. 시를 보면 그의 발걸음과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말에서 내려 가시덤불 헤치고 / 下馬披荊棘

높은 누대에 올라보니 사방이 공허하구나 / 高臺四望虛

구름이 자욱한 산은 외로운 새 날아가는 밖에 솟아 있고 / 雲山孤鳥外

백성과 만물들은 옛 도읍지에 그대로 있구나 / 民物故都餘

높은 섬돌은 수풀 속에서 황폐해가고 / 危砌依林廢

솟아 있는 소나무의 그림자도 성글구나 / 喬松落影疎

석양이 삼각산을 비추니 / 斜陽照三角

저기가 바로 임금 계신 데라 가리켜 보네 / 指點是王居

 

- 이이, 만월대(滿月臺)」(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권오돈 외 공역)

 

 

송강 정철의 문인(門人)으로 당대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았던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이 지은 시도 있다. 권필은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야인의 삶을 살았던 시인이었다. 

 

여기 오르니 홀연 마음이 처연해져 / 登臨忽覺意悽悽

인간 세상 흥망성쇠가 고르지 않구나 / 興廢人間事不齊

궁 안에 있던 나무에 서리 내리니 가을 잎새 떨어지고 / 宮樹有霜秋葉落

토성에 성가퀴 없는데 저녁 구름 나직해라 / 土城無堞暮雲低

가련해라 궁궐 섬돌은 나무꾼 길이 되었나니 / 可憐螭陛成樵路

그 누가 궁중 연못을 벼논으로 만들었는가 / 誰遣龍池作稻畦

이곳의 번화하던 시절을 그대 묻지 마오 / 此地繁華君莫問

지금은 보이느니 밤에 우는 까마귀뿐 / 只今唯見夜烏啼

 

- 권필, 「만월대(滿月臺)」(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상하 역)


『유하집』, 『추재집』, 『계산기정』

권필이 만월대를 찾아간 시기는 서리가 내리는 가을의 늦은 저녁이었다. 권필은 나무꾼의 길이 되어버린 궁궐터와 벼논으로 변해버린 연못과 그 곳의 까마귀를 보고 처연한 심정을 노래했다. 권필의 시 이후 만월대에서 울어대는 까마귀는 홍세태(洪世泰, 1653~1725)와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시에도 보이며, 필자 미상의 『계산기정』에 수록된 시에도 등장한다. 이들이 지은 시에 모두 등장하는 까마귀는 인적이 없는 만월대의 스산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고려 옛터에는 푸른 산만이 남아 있고 /故國靑山在

황량한 만월대에는 지는 해가 기울었네. /荒臺落日斜

그 옛날 이 땅을 통일했던 곳이건만 /當時一統地

무너진 성 밑에는 몇 채밖에 집이 없네./殘郭幾人家

궁터 느티나무엔 나무꾼의 노래가 서리고 /玉樹翻樵唱

구리 낙타는 들꽃 덤불에 묻혔구나. /銅駞隱野花

천년 늙어 시들은 버들가지에 /千年有衰柳

밤마다 까마귀만 원한 맺혀 운다네. /夜夜怨啼鴉

 

- 홍세태, 「만월대(滿月臺)」(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그 옛날 고려의 왕궁 터가 /舊時高麗宮

오늘은 풀밭 속에 있네. /今日草木中.

노래하고 춤추던 땅을 돌아보니 /回看歌舞地,

처량한 바람 속에 갈가마귀만 우네./啼鴉喚凄風.

 

- 조수삼, 「송도를 지나면서 만월대에 오르다(過松京登滿月臺)」(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한가한 구름 목메인 물에 지난 흔적 없고 / 閑雲咽水逝無痕

승국의 연못과 누대 옛터만 남아 있다 / 勝國池臺舊址存

숭악의 맑은 광채 설곡령에 떠 있고 / 崇嶽晴光浮雪鵠

명도의 아름다운 기운 금돝이 누웠네 / 名都佳氣臥金豚

가로 세로 놓여진 주춧돌에는 마른 넌출 얽혀 있고 / 橫縱石礎縈枯蔓

구불구불 수풀 안개 메마른 나무뿌리 드러낸다 / 詰屈林靄露瘐根

밤이 다하도록 올라와 있으니 바람 소슬하고 / 竟夕登臨風瑟瑟

등 뒤에서 까막까치 한 떼가 시끄럽다 / 背人鴉鵲一叢喧

 

- 작자미상, 만월대(滿月臺)」(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차주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