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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인재를 등용하고 민심을 달래고자
『중종실록』 80권, 중종 30년 9월 16일자 2번째 기사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 9월 1일자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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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9권, 고종 9년 3월 5일자 3번째 기사
조선의 많은 왕은 개성에 행차하여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인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조선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에서 제사를 올리고 돌아왔는데, 그 가운데 성종, 중종, 숙종, 영조, 고종 등 몇몇 왕은 개성에 행차하여 제사를 올린 후 만월대에서 과거 시험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는 개성의 인재를 등용하고 민심을 달래고자 한 것이다.
1535년 9월 개성에 행차한 중종은 제사를 올린 후에 성균관과 만월대에서 문무과 과거시험을 실시했다. 새벽에 성균관에 나아가 먼저 의식에 따라 작헌례(爵獻禮)를 행하고, 아침 7시에 명륜당에 나아가 문과 시제를 내고 유생들에게 쌀 1백 곡을 하사했다. 그리고 아침 9시에 만월대에 나아가 무과 시험을 참관했다. 이때 예악 문물을 옛 도읍인 개성 백성들에서 보여주기 위해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수레인 법가(法駕)와 깃발, 병장기 등을 모두 갖추고 고취악(鼓吹樂)을 연주하게 하였다.
숙종은 1693년 8월 30일 제릉과 후릉에서 제사를 올린 후 행궁에서 유숙하고, 다음날인 9월 1일 만월대에서 문과 시험을 치르게 하고 만월대 남문루에 나가서 활쏘기를 시험하여 무사를 뽑아 급제를 내렸다.
영조도 1740년 9월에 개성으로 행차하여 제사를 올린 후 직접 만월대에 나아가 과거를 시행했는데, 문과에는 3명, 무과에는 10명을 뽑았다. 그리고 선죽교에 비(碑)를 세워 정몽주의 절의를 기렸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고종은 1872년 20세가 되자 개성으로 향했다. 고종은 3월 1일 한양을 출발하여 다음날 개성 행궁에 도착하였다. 이후 3월 3일 제릉과 후릉에 제사를 지내고 이틀 후 만월대에서 문무과 정시를 행했다.
고종의 개성 행차는 선왕들의 행차와 비교하여 다른 점이 많았다. 만월대에서 실시한 과거에서도 문과 5명, 무과 26명을 급제시켰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해 반열에 오른 유생들에게 백미 30석과 면포 50필을 하사해 공부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고, 개성의 유생들을 차별하지 못하게 했으며 고려의 후손인 왕씨들을 천거하여 등용하게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인 현릉에도 참례하고, 영조와 같이 선죽교에 비도 세웠다. 또한 행차길 연도에서 본 흉년이 든 고을에 내탕금 5,000냥을 내려 구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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