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는 조형성과 유약의 미감뿐 아니라, 표면을 장식한 문양을 통해 당시 사회의 미의식과 상징 체계를 드러낸다. 고려청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릇을 감싸고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란, 연꽃, 국화, 원추리, 여뀌….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모란이나 보상화로 불려 왔지만, 사실은 다른 이름을 가진 꽃이 있다. 바로 ‘부용(芙蓉)’이다.
▲ 목부용의 꽃송이와 꽃술
부용은 원래 목부용(木芙蓉)을 말하는데, 중국 남부 지역을 원산지로 하는 관목성 화목으로, 가을에 개화하며 서리를 맞으면서도 모란 못지않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특성이 있어서 ‘거상화(拒霜花)’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 부용은 중국에서도 당대(唐代) 이후 문학과 회화, 자수(刺繡), 공예 전반에서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으며, 그 상징성 또한 단순한 미적 대상인 ‘절세가인(絶世佳人)’에서 고결함과 절개, 역경을 견뎌내는 ‘군자(君子)’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송대(宋代) 문인(文人)들의 시문에서 뚜렷하게 확인되며, 고려와 조선 역시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었다.
▲청자음각부용당초문발우, 고려 12세기
口徑 21.2㎝,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도면: 필자 작도)
▲청자음각부용당초문침형병, 고려 12세기
高 18.0㎝ 口徑 6.5㎝ 底徑 7.2㎝, 개인(도면: 필자 작도)
고려청자에 시문된 부용문은 외형상 모란과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도상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꽃잎의 배열, 둥글게 처리된 잎의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꽃 중앙에 강조된 수술 표현은 실제 식물 부용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고려의 장인들이 단순히 화려한 꽃을 도안화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식물의 속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문양을 구성했음을 시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술 표현은 사라지고 부용문 역시 간략하게 변화해 간다.
▲청자양각모란부용투각연화문베개, 고려 12세기
高 11.2㎝ 幅 26.7㎝, 개성 부근 출토, ⓒ국립중앙박물관(도면: 필자 작도)
부용문 청자의 또 다른 특징은 주로 고급 기종에 시문되었다는 점이다. 발우, 매병, 정병, 베개 등 의례적·상징적 성격이 강한 기물에 부용문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제작 기법 또한 양각, 음각, 압출양각, 철화, 상감 등이 있지만, 세밀한 음각과 압출양각에서 정교함이 돋보인다. 이는 부용문이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 왕실과 상류층 소비자들이 공유한 상징 체계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고려궁성에서도 이러한 고급 청자가 다수 출토되었다.
▲청자압출양각부용문화형접시, 고려 12세기
現高 2.2㎝ 底徑 6.5㎝
개성 고려궁성 6-12호 건물지 출토 ⓒ개성 만월대 디지털기록관
▲청자압출양각부용문화형접시, 고려 12세기
高 3.5㎝ 口徑 17.3㎝, ⓒ호림박물관
부용문이 고려청자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11세기 후반 이후 재개된 북송과의 교류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사신 왕래와 함께 화공(畫工)과 장인의 이동, 회화와 고급 의복(義服), 각종 선물을 포장한 직물(織物)의 문양은 고려 공예 전반에 새로운 도상적 자극을 제공했다. 이는 고려청자 부용문이 중국 도자기보다 오히려 자수 문양과 유사한 요소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용문 청자의 표현 방식도 변화한다. 12세기 전반에는 양각과 압출양각 기법을 활용한 정교한 당초형 부용문이 주류를 이루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음각과 철화 기법을 중심으로 문양이 간략화되고 절지형(折枝形) 또는 초화문(草花紋)에 가까운 형태로 전개된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청자 제작 기술의 흐름뿐 아니라, 문양에 대한 인식이 점차 상징 중심에서 형식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청자압출양각부용문완 편,고려 12세기
개성 고려궁성 1-7호 건물지 내부 출토 ⓒ개성 만월대 디지털기록관
▲청자압출양각부용문완, 고려 12세기
高 6.2㎝ 口徑 16.1㎝, 개성 부근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부용문 청자는 고려 사회가 공유한 미적 취향과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리를 견디며 피어나는 꽃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혼란한 현실 속에서도 고결함을 지키고자 했던 이상적 인간상과 맞닿아 있다. 고려청자의 표면에 새겨진 부용은 바로 그러한 사유의 흔적이며, 문양을 통해 시대의 정신을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목부용을 가장 사랑하노라, 엄연한 군자의 모습이기로. 눈서리도 두려운 바 아니니, 진흙 속에 핀 연꽃인 듯하다.”
성삼문, 「거상화拒霜花」
▲청자음각부용당초문주자, 고려 12세기
高 4.2㎝ 底徑 7.5㎝ ⓒ클리블랜트박물관
▲청자양각부용당초문주자, 고려 12세기
高 5.8㎝ 口徑 2.1㎝, 개성 부근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청자를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비색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나 그 빛 아래 조용히 새겨진 부용문을 인식하는 순간, 청자는 하나의 예술품을 넘어 당대 문화와 사상의 집적체로 다가온다. 서리를 거부한 꽃은 그렇게 고려인의 미의식과 정신세계를 담은 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은정 / 고려청자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