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궁궐 개성 만월대는 2007년부터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해 온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총 여덟 차례 이어진 발굴은 남북이 함께 이뤄낸 소중한 성과였지만, 2018년의 8차 조사를 마지막으로 현장은 더 이상 조사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발굴은 멈추었지만, 노력을 멈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추진되었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축적했던 방대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디지털기록관을 구축하였으며, 여러 차례의 《개성만월대 순회전시》를 통해 만월대 발굴 성과를 꾸준히 공유하였고, 관련 연구와 학술대회도 개최하였습니다.
이 모든 노력을 하나로 묶어낸 것이 2021년부터 5년 계획으로 추진된 ‘개성 만월대 디지털 복원 사업’입니다. 2025년 말 공개를 앞두고 있는 이 사업은 고고학, 건축학, 역사학, 디지털 기술이 한자리에 모여 발굴 성과를 하나의 데이터 구조로 통합하고, 장차 남북 공동연구와 대중 활용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려는 큰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 서부건축군 전경. 만월대 디지털 복원 사업은 남북공동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던 ‘서부건축군’을 대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1만평에 달하는 서부건축군은 고려 태조 왕건의 집이 있던 곳으로 919년에 개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자신의 집터에 궁궐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궁궐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만월대의 원형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서로의 관점과 해석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합의해가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 어떤 고민과 생각,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을까요? 어떤 노력을 기울였기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목표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이번 디지털 복원 사업에 참여한 고고학, 건축학, 디지털 복원, 역사학 전문가 네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2015년 만월대 발굴조사 현장에서 금속활자를 계측하는 이현주 차장
고고학자로서 만월대 발굴과 디지털 기록관 구축에 참여해 온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현주 차장은 이번 사업을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만월대의 발굴은 한 번의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축적과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작업입니다.
이 차장은 특히 발굴–분석–해석–복원의 전체 과정을 단절 없이 연결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강조합니다. 발굴 당시의 상태, 연구자들이 주고받은 해석의 맥락, 유구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을 곧 미래 연구의 기반으로 만드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디지털 복원 사업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발굴 데이터, 건축 해석, 복원 모델링을 별도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 구조로 엮어두는 것입니다. 그는 이 사업이 단지 많은 연구의 결과물들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남북 공동연구를 위한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미래에 남북 연구자가 다시 만날 때 유일한 공통 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록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미래의 대화를 위한 기반입니다.
그에게 이 사업은 “기록을 지키는 일”에서 더 나아가 “연구를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발굴 위에 세운 상상력, 류성룡 교수가 말하는 디지털 복원
전통 건축 전문가인 고려대학교 류성룡 교수는 이번 사업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연구를 전진시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평가합니다. 실제 복원은 설계 기준과 해석 차이로 논쟁이 반복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다양한 가설을 더 자유롭게 검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굴에서 확보한 것은 어디까지나 ‘터’입니다.
그 위에 어떤 건물이 올라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은 정답을 선언하는 수단이 아니라,하나의 가설을 시각화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류 교수는 이러한 가설을 세우기 위해 한·중·일의 같은 시기 전통건축을 비교 조사하며 만월대 복원에 적용 가능한 구조적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고려 건축은 남아 있는 실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동아시아 전체의 전통 건축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둥 간격, 지붕의 흐름 같은 요소는 비교 연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월대 디지털 복원은 이러한 비교 연구와 고고학 자료, 남북의 조사 기준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말로는 합의가 잘 되지 않던 문제도 디지털 모델에서 직접 비교해 보면 바로 결론이 납니다.
서로의 주장을 시각화해보는 일이 조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사업의 학문적 의미도 강조합니다.
고려 건축은 남북 모두 연구 기반이 부족한 분야이며, 만월대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드문 연구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남북이 같은 자료, 같은 모델을 기반으로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그에게 디지털 복원은 정답을 고정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가설을 시험할 수 있는 열린 연구의 장입니다.
상상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연구자들의 토론과 연구, 협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디지털 복원 플랫폼을 개발한 주식회사 콘트롤시비 이준호 대표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누구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협업툴을 만드는 것.”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제작팀이 완성한 결과물을
영상이나 전시물로만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콘트롤시비가 맡은 역할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툴(tool) 자체를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직접 가설을 적용하고 모델링을 수정할 수 있도록, 제작·수정·기록이 모두 가능한 작업 환경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그 정보에 접근하고 재가공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면 활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다시 만들 수 있는 곳’을 지향했습니다.
또한 대북 제재 상황에서 언리얼, 유니티와 같은 상용 3D 엔진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엔진을 직접 개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대표는 “이미 우수한 도구가 많은 분야에서 새 엔진을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 선택이 장기적으로 큰 자산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엔진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AI 기술 환경에서도
대기업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사업의 본질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해 ‘복원’이 아니라 ‘재현’에 가깝습니다.
정답이 하나일 수 없기 때문에, 플랫폼은 다양한 가설과 모델링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준호 대표는 3D 원본 데이터와 복원 툴을 함께 공개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는 문화유산 디지털화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실제 궁궐처럼 회랑을 걸어갈 수 도 있고, 궁궐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도 있습니다.
▲ 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이자 서울대학교 교수인 정요근은 이번 만월대 디지털 복원 사업의 핵심 가치를 “끊어진 협력이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발굴이 멈춘 상황에서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018년 이후 현장 조사가 중단되었지만, 기록과 데이터만큼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물리적 접근이 어렵지만, 기록 기반의 연구 협력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특히 디지털 복원이 남북 공동연구의 재개를 준비하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공동연구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여건과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이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플랫폼은 남북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자산입니다.
학문적 기반을 남기는 일이며, 공동연구의 토대가 되는 작업입니다.
그는 이 플랫폼이 정답을 하나로 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모델과 해석을 동시에 비교할 수 있는 구조임을 강조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제시된 다양한 해석이
각각의 구조물처럼 쌓여 있는 형태입니다.
이는 남북 연구자들이 같은 자료와 모델을 보며 토론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물리적 제약을 넘어 협력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합니다.
디지털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남북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같은 기록과 같은 모델을 바라보며
해석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정 교수는 이번 플랫폼이 단순히 만월대를 복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남북 연구자가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비워둔 자리이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연구의 테이블”이라고 표현합니다.
정 교수에게 디지털 복원은 과거를 보존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의 공동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연결 장치였습니다.
언젠가 남북이 이 플랫폼 위에서
같은 모델을 보며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긴 기록은 그 대화를 위한 기반입니다.
▲ 남과 북이 디지털 복원 플랫폼에서 만나 같은 주제를 넣고 이야기하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기록이 있어야 다시 만납니다 ― 네 사람이 건네는 한 가지 메시지
만월대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는 사라진 과거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지금의 조건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마련한 또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발굴 기록을 정밀하게 남기고, 그 위에 건축적 가능성을 세우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언젠가 다시 이어질 공동연구를 위해 기반을 정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자리에서 전한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합니다.
기록이 있어야 다시 연구할 수 있고,
기록이 있어야 협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복원 플랫폼은 단일한 해석을 제시하는 완성본이 아니라,
여러 가설을 비교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열어둔 연구의 장입니다.
이 열린 구조는 남과 북이 같은 자료를 보며
각자의 해석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협력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현장 발굴이 멈춰 있는 지금,
기록과 데이터를 정리해 두는 일은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언젠가 공동연구가 다시 열리는 순간,
이 플랫폼은 연구자들이 같은 모델을 보며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공통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만월대 디지털 복원은 그 출발점을 조용히 마련한 작업이었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일은 과거를 붙잡기 위한 행위만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 2007년 2차 만월대 발굴조사 착수식 발굴현장 전경. 이 자리에서 남과 북이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