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2018년이 마지막 방문이었으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개성이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 있다.
특히 무더운 여름이면, 개성 만월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맛이 있다. 그 맛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김치, 그리고 고수
대체로 ‘개성’ 하면 쌈 형태의 배추김치을 떠올릴 것이다. 김칫국물이 자작하게 깔려있고 젓갈의 맛보다는 배추 본연의 맛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는 김치이다. 하지만 근데 이 개성 배추김치를 먹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김치에 파가 아닌 풀 같은 게 보이고, 고수에서 비누 맛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고수인가 긴가민가할 정도로 작은 1mm의 잎사귀라도 최대한 골라내고 먹기를 추천한다. 사진에 보이는 저 작은 고수 줄기 하나만 입에 들어가도, 시원한 맛이 바로 비누 맛으로 바뀌니까 웬만하면 최선을 다해 피하기를 권한다. 반대로 고수를 좋아한다면 김치를 신경 안 쓰고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이것은 유전자의 축복이다.
개성과 황해도 지방에서는 김치 양념에 고수를 넣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심지어 고수를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고수김치까지 담근다니, 고수를 못 먹는 입장에서는 양념에 조금만 들어간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배추김치도 여름에 먹을 수 있지만, 여름에는 오이김치와 열무김치가 제격이다. 개성 특유의 슴슴하고 깔끔한 맛이 살아 있는 오이김치와 열무김치는 더위에 잃은 입맛을 살려 주는 데 일품이다. 다만, 이 여름김치를 먹을 때에는 배추김치보다 더 주의 깊게 보고 먹어야 한다. 재료 자체가 고수랑 비슷한 녹색이라 골라내기가 더 어렵다.
유독 김치에 고수가 많이 들어간 날, 평양 출신 북측 조사단한테 이에 대해 하소연했더니 그들도 고수가 들어간 김치는 먹기 힘들다고 ……. 고수 하나로 남북이 함께 반고수파를 결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고수를 보면, 맛있던 김치가 화장품 김치로 변했던 만월대의 여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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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차 만월대 발굴조사 발굴 현장 점심 도시락 (3) |
오이냉국
오이냉국은 개성 만월대 현장에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이었다. 여름이면 점심식사의 국으로, 또 오후 간식으로도 자주 등장했다. 콩나물국, 미역국, 된장국과 같은 국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나오지만, 오이냉국은 오직 여름에만 맛볼 수 있었다. 국과 간식에서 오이냉국이 사라지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된 것이었기에 가을에 시작한 2018년 조사에서는 오이냉국을 맛볼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나는 식초와 설탕 없이, 소금과 약간의 국간장, 참기름에 절인 채를 썬 오이에 시원한 물을 부은 담백한 냉국을 좋아하지만, 현장에서 맛본 오이냉국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신맛이 강했다. 오이만 들어 있을 때도 있고, 고춧가루가 살짝 들어가기도 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간식으로 먹던 오이냉국이 더 시게 느껴졌던 것 같다. 또 다른 냉국으로 미역냉국도 있다. 이것은 오이냉국보다 훨씬 더 시어서, 가끔은 그냥 식초에 물을 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시고 짭짤한 냉국을 먹고 나면, 이상하게 더위가 조금 가시고 축 늘어졌던 몸도 조금은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매년 여름 오이냉국을 만들 때마다 식초나 설탕, 고춧가루를 넣어볼까 고민하지만, 그 맛은 왠지 개성에서만 맛보고 싶어서 아직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시큼 짭짤한 오이냉국은 여름 만월대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생각에, 언젠가 다시 그 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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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차 만월대 발굴조사 점심 도시락 (11) |
에스키모
오이냉국과 함께 만월대 현장에서 여름 더위를 식혀줬던 또 다른 간식은 ‘에스키모’로 불리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북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장에서는 ‘에스키모’라는 말만 들었다.
에스키모는 달달하고 끈적한 느낌의 유크림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안쪽에는 각종 시럽이 들어 있다. 딸기나 수박처럼 익숙한 과일맛도 있지만, 대추․들쭉․참외처럼 생소한 맛도 있다. 생소한 참외맛이나 대추맛도 생각보다 우유와 잘 어울린다.
아이스크림 이름에서 특이한 점은, 사진처럼 ‘○○향’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딸기향 에스키모’의 원재료에는 ‘딸기향’만 적혀 있고, ‘오곡에스키모’처럼 이름에 ‘향’이 없는 경우에는 실제 원재료(락화생(=땅콩), 검은 참깨, 녹두, 콩, 팥 등)가 적혀있는 것을 보면 원재료가 일정 비율 들어가지 않으면 향을 써야하는 것 같다. 그러니 우유에 미숫가루를 탄 듯한 맛이라도, 과일향에 비해 조금 텁텁할지라도, ‘오곡에스키모’를 고르는 게 건강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에스키모를 마지막으로 맛본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포장도, 맛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새로운 에스키모 맛이 궁금해지는 여름이다.
남보라 /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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